<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 영화에 대한 문학적 분석의 신선함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신형철
- 독서 기간 : 2018.04.24 ~ 2018.05.29
▣ INTRO
작년에 바쁜 나날들을 보낸 탓에 영화를 거의 보지 못한 나는, 올해 꼭 많은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최소 한달에 2~3 편의 신작들을 영화관에서 보면서 벌써 상반기에만 20편 정도의 영화를 보게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소중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책들과 같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구입한 책이기에, 사랑에 관한 진부한 이야기일 것 같아 읽기를 미뤄오다 마지막으로 읽게된 책이었다.
참 어려웠다. 책에서 평론한 영화들 중 내가 보지 않은 영화가 거의 반이었고, 영화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굉장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 문장씩 머리에 이해하며 넣고싶어 책을 천천히 읽게 되었고, 분명 기억나지 않을 평론이 대부분이겠지만, 읽고 난 후 굉장히 보람찼다. 책을 읽기 전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봐왔던 영화를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시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 TABLE OF CONTENTS
1.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 사랑의 논리
2. 발기하는 인간, 발화하는 인간 - 욕망의 병리
3. 필사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 고수하기 - 윤리와 사회
4. 나는 다시 나를 낳아야 한다 - 성장과 의미
5. 부록
▣ REVIEW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책의 제목과 내용이 매칭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4개로 나눠진 목차가 마치 각각이 하나의 책인 듯 느껴지면서도, '정확한 사람의 실험'이라는 제목 안에는 묶이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 두 목차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영화 속 사랑과 욕망이 느껴졌고, 마지막 두 목차에서는 알지 못했었던 영화가 주는 사회적 이야기에 대해 배웠다. 작가는 자신이 영화전문가가 아닌 상태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문학적인 부분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그 중 인상깊었던 것 몇개만 소개해보려 한다.
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이누도 잇신, 일본, 2003
이 영화는 보지 못하고 평론을 먼저 봤지만, 사랑에 대한 글귀들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뇌리에 참 인상깊이 남았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여자, 조제와 그녀와 불분명한 관계를 가지는 쓰네오의 사랑 이야기이다. 책에서는 쓰네오가 조제에게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 아닐 것이라 말하고, 나 또한 그 말에 공감한다. '쓰네오'와 '조제' 사이의 사랑에 대해 책에서 정리한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명쾌하게 정리된 부분이라, 너무나도 공감이 간다.
"쓰네오가 조제를 사랑하는 데 성공할 수 있으려면 조제의 결여(다리)만큼의 결여를 제 안에서 발견했어야 했다. 그러나 쓰네오는 실패했다. 예나 지금이나 쓰네오에게는 '없음'이 너무 없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 분명해지는 것이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였기 때문이다. 조제는 성공했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2. 김기덕과 홍상수
개인적으로 두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내용이 자극적이라고 느껴지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내용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라 불리는 이 거장들의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보는 나에게 '너는 영화를 너무 몰라'라고만 말해주는 지인들과는 달리, 책에서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정리해준 부분이 참 좋았기에 그 부분을 실어보려 한다.
"욕망과 관련해서 김기덕은 몸의 실패를 다루고 홍상수는 말의 실패를 다루는데, 김기덕은 몸의 실패를 비관적으로 심화시키고, 홍상수는 말의 실패를 낙관적으로 다독인다."
"인간의 조건(즉, 욕망)을 탐구한 결과인 그것들, 잊을 만하면 우리가 인간임을 다시 상기하게 만드는 선물. 조물주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가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은 것은 인간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는 인간의 삶이 그 욕망과 더불어 장차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미리 계산하지 못했거나 안 한 것 같다. 그 계산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3. 더 헌트 - 토마스 빈터베르, 덴마크, 2012
참 무섭지만, 가장 주위에서 접하기 쉬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거짓말로 인해 성범죄자로 낙인된 '루카스'는 사회적으로 매몰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루카스'의 반론, 아이들의 고백,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한 인간들의 집합적 이성이 '합리적 부조리'를 만들어내며 그를 마녀사냥하기 시작한다. 진실로도 설득이 되지않는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몇년전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기사에 혀를 차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냐'라는 심정으로 말하던 사람들이 생각이 났고, 이런 속담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책을 보며 알게되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쉽게 '유죄추정의 원칙'에 몸을 싣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은 유죄추정의 원칙이 대체로 옳다고 우리를 오도한다는 점에서 혐오스럽다."
출처 : 네이버 영화
4.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미국, 2013
가장 인상깊었던 평론이었다.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주위 본 친구로부터 많은 호평을 들었던 영화였던지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영화 어땠어?'라는 물음은 '화려하더라', '우주의 광활함을 느낄 수 있었다'라는 시각적인 평가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평론을 읽으며, 제발 다시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우주를 다룬 영화와는 다르게, 그래비티는 '왜 돌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삶이 아닌 생명의 관점에서 자체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답변을 이 책에서는 찾아주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이가 생각해오던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방향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꼭 영화를 보고 이 평론을 읽기를 바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EPILOGUE
'설국열차'에 대한 평론을 읽고, 책 뒷부분의 '박찬욱' 감독의 글을 읽는다면, 이 작가가 쓴 글들이 얼마나 유려하고 명쾌한 글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가 서사에서 뽑아내는 의미들을 읽어내려갈 때면, 수능 공부할때 보았던 문학작품들의 해설집이 떠오른다. 늘 어려운 작업은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인데, '박찬욱' 감독의 말마따나 '감독조차 자기 영화를 이렇게 잘 알기는 힘들다, 알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는 힘들다.'라는 것이 이 책을 다 읽고 느꼈던 감동이었다.